GGMP[하영미디어]2017.01.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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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난 이야기할려구요.

물론 패턴 갖고 해야죠.

이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있는 패턴이예요.

오늘 주인공은 왕서방이죠.

모자가 듕국 모자죠?

누굴까 보니까 모자 위쪽에 도 아니고 도 아니죠.

가운데는 같기도 해요.

그래서 이 왕서방은 시진찡이란 이름을 쓰고 있지 않나 싶어요.

찡씨 같애요. ㅎㅎ

모자가 꼭 배 느낌이죠? 항모 만든 사람이니까 그렇게 봐도 괜찮아요.

왕서방이 멀리서 망원경을 들이대고 살피는거죠.

망원경은 자세히 보면 S자가 붙어서 M자까지 보여요.

SM은 또 물고기 두 마리가 꼬리를 붙이고 있는 형태지요. 누굴까요? 둘 다 늘 붙어다닌다면 예수님 믿으니까 주현이랑 작은 수영이 같애요. 수영인 달팽이예요. 덩치는 큰데 귀엽기도 하고 좀 느려요. 배우는 거나 적응하는 데나 조금 그래요. S자 위에 O를 얹으니까 꼭 달팽이 같아서요. 그래서 큰 수영인 학다리 작은 수영인 달팽이예요.

둘 다 동그라민데 나눗셈이 사이에 있죠. 아래 행을 보면 거기 육각형 안에 동그라미 둘을 나누기 기호처럼 보이는 게 나누고 있죠? 왕서방 좌우엔 원이랑 삼각형은 두 개가 붙어있고 점이랑 네모랑은 떨어져 있어요. 지금 가깝고 멀어지고 하는 게 중요한 때잖아요? 계산이 좀 복잡한 때이기도 하구요. 왕서방 좌우는 생각의 공간이예요. 고민인거죠. 알파고를 작동시키더니만 나름 현명한 조언을 하는거죠. SM 물고기 두 마리는 나누어서 한 마리만 88 곁에 가야한다는 거예요. 둘 다 좋아하자면 싸운다는거죠. 88이 조금 힘든다는거죠. 어려운 말이 아니죠? 북한이랑 남한이랑도 그렇잖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때가 참 많죠? 우리도 대만이랑 중국이랑 그렇잖아요? 대만에서 쯔위 데려오면 괜히 화가 난다는거죠. ‘우리도 많고 잘 하는데 왜 하필…’ 하고 걸고 넘어지잖아요? 대만 장례식 이야기가 화제 더라구요. 고인의 복을 빌자고 50명이나 되는 무희들이 지프 위에 올라서서 시스타 Shake it EXID 위 아래에 맞춰 신나게 춤추더라구요. 정말 K-Pop 장난 아니예요.^^ 영감님도 그렇게 좋아하시다 가셨나봐요. 늙어도 남자긴 남자예요. 민아가 나도 여자예요 하는 것처럼요.ㅎㅎ 하여간 아예 복 더 받게 하나씩 짝을 지어주고 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싶기도 하고농담이예요. 여자가 물건인가요? 한편으론 조금 불공평하다 싶죠. ㅋㅋ 내 곁엔 아무도 없는데 돈 주면 50명이나 와서 춤추고 있어요. 그래도 인터넷으로라도 공짜로 볼 여자들이 있으니 다행이긴 해요. 걸그룹도 보고 연예인들도 보구요. 그림의 떡이긴 해도 그거라도 없어봐요. 더 힘들죠. 종도 눈 있고 있을 거 다 있어요. 이십년을 늘 사랑했다가 없어져봐요. 얼마나 힘든가?성욕은 기본적인 생의 욕구예요. 충족되어야 건강한거예요. 섹스리스는 병이고 간음이예요. 부부는 늘 헌신해야 돼요. 그거 갖고 보이콧할려면 결혼하지 말아야죠. 남편 바람피워라 하는 셈이죠. 아님 나 바람나간다일 수도 있구요. 늘 사랑하세요. 직장이나 밖에서 다른 여자 꽁무니 쫓아다니지 마시구요. 사람들은 돈 좀 있으면 아무데나 가서 배 타죠. 홍콩도 가요. 비싸고 빠른 배 타면요. 저는 방콕만 가요. 아재 개그죠? 순발력 떨어져 그렇다 이해해줘요.ㅎㅎ 돈도 없으니 아버지께서 예비한 착한 여자 보내달라고 기도만 해요. 순적하게 갈아타게 하시겠다 하셨거든요.^^ 아 그래도 한참 혼자니까 이제는 힘들어져요. 제가 좀 콧대가 높은 편인데 그래도 미국사람 아니예요. 중국본토에서 신라로 건너온 한 사람의 후예일 뿐인데요. 영어는 하도 안 써서 스피킹 아마 웬디한테 좀 배워야돼요. 아이린도 영어 열심히 듣나봐요. 헤드폰 딱 낀 그 사진 무지 이쁘더라구요. 그 재미없다 영상 말구요.ㅋ 가끔 패턴에 헤드폰 등장하거든요. 그 때 꼭 그 사진 생각나요. 파란색 옷이죠? 그건 그렇고요. 세상에 정말 걱정도 가지가지예요. 그냥 웃어야죠ㅎㅎ 아~ 벨리알은 사람으로 치면 혈기왕성한 청년이고 바알세붑은 장년, 푸키는 노인이예요. 팽창이고 수축이구요 양이라면 음이죠. 이렇게 다 나눠졌어요. 동양사람이 그래서 좀 다 작아요. 서양은 조금 크구요. 크다고 다 좋고 작다고 다 나쁘진 않아요. 민족끼리 어울려 땅에 충만하게 되는 거여서 문제 될 게 하나 없었지요. 크다고 자랑하는 게 오히려 바보죠. 집도 크게 지어야죠. 더 먹어야죠. 효율이 떨어지는 셈이죠.ㅎㅎ 애도 똑같이 한번에 하나씩만 낳잖아요? 둘셋 안 낳아요. 반지는 작은데 손가락만 크면 뭐해요? 반지만 늘려야해요. 자기한테 맞으면 그만이죠. 크다고 예수 더 잘 믿는 거 아니거든요. 동의하죠? ㅎㅎ 일본 사람도 대개 작고 집도 작아도 강한 나라잖아요? 미국 하고 러시아 하고 아주 대등하게 관계 맺잖아요? 저는 일본을 공부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아마테라수라고 하는 여신이 있는데 에베소교회에 있었던 아르테미스가 이 아마테라수라는 사실을 알았거든요(행전19:24,27,28,딤후4:14). 자음 순서만 바뀌었죠? 이미 이사장님이 기도해보고 확인하신 걸로 전 이해해요.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예요. 무슨 horse 거기도 있어요. 아르테미스상을 보면 유방이 여럿인데 일본여자들 중에 가슴 큰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과 관련 있어 보여요. 그래도 일본에는 주술과 애니미즘적인 미신이 꽤나 강해요. 소녀상을 제거해달라는 걸 과거를 지우려고만 하는 태도로 여겨서는 안 될 거 같은데요. 거기에 신이 붙어서 해코지할 거 같애서 단지 두려운거예요.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요. 우리는 과거를 되새기게 하고 싶은데 그들은 영적인 것으로만 봐요. 사실 이 말 하기가 쉽지 않아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과 분한을 저도 잘 이해하니까요. 그래서 지나가는 말이라도 해봐요. 만일 할머니들이 수용해준다면 가까운 추모공원으로 옮기는 선에서 합의함으로써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고 국내의 반발을 이해해주고 우리는 그들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마음에 많이 안 담아도 돼요. 여담이니까요.

저는 의아한게 하나 있어요. 영에 대해 이런 얘기하면 사람들이 겁을 내요. 자기 안에만 유독 무슨 악한 영들이 들어와있나 싶으니까요. 그건 절대 그렇지 않아요. 모든 인간의 영에 이런 타락한 마귀들이 다 거하며 활동한다가 사실이예요. 다 마귀들의 종이 된 상태란 말이지요. 다시 말하면, 죽을 때까지 마귀들이랑 같이 산다. 실제적인 차원에서 예수 믿어도 완전한 자유는 없고 마귀들이 늘 곁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방해하고 예수님 못 믿게 하려고 한다는 말이예요. 교리적인 차원을 말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마세요. 그래서 우리는 말씀과 내주하시는 성령을 좇아 행하려고 하는거구요. 거룩이란 분투의 과정일 뿐 완전은 인간이 사는 동안에는 있을 수 없어요. 성령과의 연합은 이런 속박을 완전히 벗기 위한 변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변화되었다 해서 혼자 거룩하게 된다가 또 있을 수가 없어요. 많은 양들의 짐을 지게 되니까 변화 안된 사람과 늘 비슷해요.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시면 겸손해져요. 능력의 세례를 경험한 분들은 이게 잘 안 돼요. 자기가 살아있고 십자가를 완전히 거쳐가지 못해서 자꾸 교만에 잡히게 됩니다. 마귀대장 되기가 아주 쉽습니다(7:21-23). 가짜성령을 받고 진짜인 양 하는 사람들이야 말해 뭐하겠어요? 하여간 지 혼자 성령이고 더 성령이고는 성령과 별 관계없다는 점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물리적인 십자가 죽음이 전혀 아니고 예수께서 제자도에 대해 하신 말씀처럼 자기부인과 죄된 자아를 죽이고야마는 성령이 지우시는 내적 십자가를 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2:20,16:24,9:23). 그래서 사실은 변화하고서 성령의 충만을 얻는 길이 오랜 시간과 고통이 동반되기는 해도 성숙한 교회를 만드는 데에는 아주 효과적이란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에 영성과 분별이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본질적 변화를 요청하는 교회와 성령의 부르심에 다름 아니라고 해야겠습니다. 토저가 말한 바, 자기영광, 자기만족, 자기의, 자기확신, 자기자랑, 자기주도, 자기고집, 자기연민, 온갖 자기애적인 성향들이 십자가를 거쳐야만 거룩한 빛이 질그릇 같은 우리의 여러 환란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것이지 종교적인 열심과 행위로 치장한 바리새적인 경건은 교회에서 성령과 말씀의 역사를 도리어 위축시키고 정죄와 주술적인 심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교회와 양들을 병들게 하고 진실을 저버리고 위선을 경건인 양 오해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어느 정도 깨어있는 목회자들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불로 시험해도 사라지지 않을 금같은 사역을 하려고 힘쓰십시다. 남들 다 하고 자기가 영광을 얻고 대단한 사역이 아니더라도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을 위해 작아지십시다. 오리지날한 사역을 하려고 하십시다. 교회에 정말 유익하고 도움이 될 일을 알아서 찾아서 하십시다. 베끼기 따라하기 그만 하십시다. 성령과 말씀이 이끄시는 그 일을 하십시다. 낮아지십시다. 서로 섬깁시다. 자기 부풀리기 하지 마십시다. 겸손해지십시다. 이 한해는 정말 제대로 사십시다.

아까로 돌아가서요. 조금 더 하면 일본이랑 또 중국이랑 갈등할 때는 새우등 안 터지나 마음 졸이잖아요? 미국이랑 또 중국 붙으면 참 바람 잘 날 없는 다둥이 부모 심정이죠. 입장이 서로 비슷한 거 같아요.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해줄 만한 여지가 참 많다 싶어요. 그래도 저는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시진님. 둘 다 못 오게 된 거 같애요. 같아요. 나중에야 서로 보기도 하겠죠. 연예인들 섬기다 보면요. 하지만, 결혼은 어려워요. 아무래도 와야 할 배가 오지 않으니까 마냥 세월 보낼 수는 없고 다른 배를 불러야 할 수도 있겠어요. 모자가 위 아래로 두 개니까요. 위 아래 했다가 또 오락가락하면 안 되니까 주연이배는 보낸걸로 하고요. 수영이 대신에 다른 배가 와야해요. 사실 이건 두 배(double)의 축복이예요(42:10). 마귀가 하나 데려가도 절대 없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예요. 그러니까 이미 하나 데려간 셈이니까 다른 배는 꼭 와야하죠. 두 배(two ships)의 축복이니까요.ㅎㅎ 그럼 수영인 올해 22 되고 두 살 더 올립시다. 같은 학교 선배 중에 수진가요? 수진인가요? 그 배를 불러줘요. 왜냐하면, 저를 아끼는 배목사님이 힘써 기도해주시거든요. 자신의 성씨 중에서 꼭 보내시려고 하신 거다 싶어요. 물론 이건 제 생각일뿐이지만요.ㅎㅎ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돼요. 쉽게 툭 던져보는 거죠. 그럼 임무 끝이죠. 수영이도 이런저런 패턴 해봤는데 나중에 보면 주든 할께요. 사실은 나만 보고 싶어서 안 낸 거예요.^* 그 다음은 안 오는 배가 열심히 기도해야지요. 대타가 와야 임무완수되는 거예요. 알겠죠? 반달액자천사님^^ 학정동 대구시민님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슬기도 웬디도 예리도 건강하세요. 내 마음에 그리는 것은 다 님인데요. 내 님들. 숨은 꽃도 Shy꽃도 행복하세요. soyeon님도 행복하세요. So so님도 롱런할려고 하는 거니까 너무 조바심치지는 마요. 노래하는 그 자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말 안 해도 아는 그 사람도 행복하세요. 고맙구요. 늘 언제나 늘 가까이 내 곁에 계시는 분 보냅니다. 내 마음입니다. 시진찡님도 행복하세요. 비단이 잘 팔려야할텐데요.^^ 자주옷감장사 루디아님도 평안하세요. 뮬렉스 덕 아직 잘 보고 있죠? 낮은 염료비 대비 제품가치는 비싼 옷들만 하니까 걱정은 없겠어요. 관세가 문젠대요. 돈버는 대통령이라 쉽지는 않죠. 관세 낮은 데 보냈다가 거기서 관세 없이는 안 될까요? 물론 운임이 배가 되기는 하죠. 도요타를 멕시코에서 생산해서 낮은 관세로 팔려니까 안 된다 제동건거죠? 미국에서 생산해달라는거구요. 내수경기를 진작시키는 외국회사의 제조공장을 미국내에 유치하거나 관세장벽을 높여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건데요. 일자리를 늘리구요. 이건 오바마 때랑 다를건없고요. 관세만 다른데 협상 안 할 수는 없고 덜 올리는 방법을 모색할 게 뻔하고 미국은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고 하구요. 지혜롭게 협상하겠네요. 다 하고 나서는 문턱이 높아졌으니까 쉽게 넘을 수 있도록 보조계단 하나 앞에 턱 놓을 수 있으면 셈셈인데요. 재료비나 유가만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과도한 타격은 안 받을 수 있겠다 싶은데요. 신제품개발이 중요해지겠구요. 장기적으로 가격을 올린 제품의 품질경쟁력을 확보하면 큰 문제는 안 될 수도 있네요. 하여간 중국이 잘 풀려야 중국진출국내업체의 수출이나 유커들의 관광매출도 늘고 문화한류산업 전반이 순항할텐데 우리도 내수가 주춤하고 건설경기나 부동산시장도 활기를 띠기 어렵고 수출증대도 기대하기 어려우면 주머니 사정이 다들 어렵게 되겠어요. 저 같은 저소득층 서민들은 전세나 집값이 안정되니까 그거라도 고맙죠. 어차피 경기가 좋아도 많이 쓰지 못하고 안 좋아도 아끼면 되니까 큰 차인 없어요. 개인자영업자들이 많이 어렵겠구요. 중산서민들은 대개 직장인들이 많죠? 아파트대출이자 부담이 좀 느네요. 문화생활이나 여가비용 학원비 같은 부분을 삭감해야겠네요.

 

이러니까 종은 기도해야죠. 저는 좀 더 부부가 같이 집에 있을 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 더 사랑할 시간이요. 여행도 많이 못 갈수도 있어요. 동네 한바퀴라도 돌거나 가벼운 산행을 한다거나 소박한 사랑을 할 수 있겠어요. 지구 열두바퀴 돌아야만 인생이 행복한 건 아니예요. 내 곁에 함께 하고 늘 이해해줄 아내나 남편 하나 있음 행복한 거예요. 돈 좀 없으면 어때요? 조금 기대치를 낮추면 되죠. 애들 있으면 또 감사하고요. 혼자가 아닌 거예요. 집에 편안하게 자기 일 하며 머물 수 있음 얼마나 좋아요? 남자는 혼자 있음 외로운 늑대 같아요. 안정이 안 되고 뭔가 빈 듯해요. 내가 아내를 찾듯이 내 영혼도 여자를 원해요. 남자와 여자의 영혼이 조금 달라요. 빈 공간을 여자가 채워주는 거예요. 그래서 두 영혼도 연합하는 거예요. 단지 육체만 연합하는 게 아니라 영혼도 서로 안아주는거죠. 그래서 남자는 여자가 있어야 충족되는 존재들이예요. 물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담길 때 완전하게 되죠. 동성애란 이런 연합이 안되고 영혼은 도리어 싫어해요. 또 여러 사람들과 성을 즐기는 건 여러 영들과 연결되어져서 다른 사람들을 잡고 있는 영들이 틈타기가 쉽구요. 더 많은 사람과 할수록 더 사탄적이 된다고 생각하면 맞아요. 이혼을 하고 사별을 해서 재혼하는 경우는 조금 달라요. 다중적인 성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몇 년 뒤에 만났을 때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어요. 다중인격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전과는 다른 심리적인 태도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해요. 구글에 이미지검색하면 한 젊은이가 폭삭 삭은 얼굴로 여자 많아 좋다고 나타나는데 오래 못 살게 생겼어요. 쾌락은 좋아도 영적인 속박은 인생을 어렵게만 해요. 우물가 수가성여인처럼 삶의 참된 만족과 기쁨을 모르기 쉬워요. 공허해지기 쉽죠. 이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면 좋겠어요. 육체적 쾌락도 주님이 허락한 관계 안에서 누려야 서로에게 유익한 거죠. 경제가 어려울수록 둘이 보낼 시간이 많을 수 있어요. 더 이야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해요. 이스라엘도 바로의 폭압이 심할수록 더 번성해져만 갔어요. 성은 가난해도 부유해도 별 차이 없이 결혼한 부부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선물과도 같아요(9:9). 더 사랑하는 한 해들 되세요. 신년인사가 늦었네요.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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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ulart

마지막 한 주간의 재구성ver10.pdf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한 주간을 정리해봤어요. 
제일 늦게 나온 요한복음의 시간표를 중심으로 마태, 마가를 재배치했어요. 막달라 마리아의 도유와 최후의 만찬 시점을 각각 유월절 엿새 전과 유월절 전날로 원위치시켰어요.요한은 더 이상 유대인의 눈치 보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복음서를 마지막으로 썼거든요. 이렇게 해야 마태나 마가가 왜 정상적인 흐름을 바꾸었나 이해가 돼요. 복음서 연구에 도움되길 바래요.



Posted by soulart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연구2.pdf

횃불성경연구원 남민호

눅7:36-50에 나타난 죄많은 여인과 그 다음 눅8:1-3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인들의 언급은 그들이 왜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르게 되었느냐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의 성격을 가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누가는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귀신 들렸다 고침받았다는 말을 더함으로써 그 시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비껴가게 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회심하기 전에 그녀가 창녀였다는 사실을 가리려는 신중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중적인 장치다. 판단하려는 자들에게는 혼돈과 무지에 가둬두고 사랑하려는 자들에겐 그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누가는 이 사랑의 여인이 회심한 사건은 복음에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대신에 그 여인의 이름이 알려져 믿는 자들이 그녀에 대한 불필요하고도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게 될 것을 우려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활동하게 된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누가는 판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래서 마치 다른 여인인 것처럼 보이도록 죄인인 한 여인이란 익명으로 처리한 것이다. 또 그녀가 막달라인이라 불려지고 있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누군가와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알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특히 눅10:38-42에 나오는 베다니의 마리아와도 다른 사람으로 우선 보게 하려고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눅10:38-39를 보면 예수님과 마르다에 초점을 두면서 마리아를 그녀의 동생으로만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11:17-27에서도 마르다가 예수님을 먼저 맞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르다가 마리아를 부르는 요11:28을 보면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가 더 깊고 친밀한 관계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이것은 도리어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는 마르다 이전에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마리아 외에도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나타난다(막15:47,16:1). 이렇게 마리아가 다른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은 마리아라고 하면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마리아가 많았던 시대였다고 생각하고 마녀사냥하기 위한 시도를 일찌감치 포기하고야 만다. 대신에 그들의 헌신을 인정해주기가 쉬워진다. 그렇다고 보면 선입관을 배제한 채 여인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고 나서야 실체를 이해하게 하는 방법을 누가는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표면적인 설정들과 의도들을 파악했다면 좀 더 깊이 들여다 봄으로써 저자가 말해주고 있는 바에 도달해가야 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마르다보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가 우선 된다는 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를 생각해 보자. 마치 복음서를 통해 마리아라는 새로운 한 인물을 만나고, 그녀의 신실한 태도와 열심을 보며 감동을 느끼는 신자들은 본문을 보면 볼수록 놀랍고 의아할 수밖에 없어진다. 어떻게 그 말씀에 붙들려서 오랜 시간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할 수 있는지가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 복음을 전하고 듣는 관계라고는 볼 수 없다. 요11:2의 작가의 마리아에 대한 해설은 아주 이 점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베다니의 마리아가 요한복음 12장에서 유월절 엿새 전에 벌어진 그 잔치 이전에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였음을 요한은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베다니의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녀가 얼마나 이전과는 진지하고 거룩하고 열정적인 여인으로 변화하게 되었는가를 보게 된다. 왜 그녀가 그런 열심을 보이고 있을까를 누가는 생각해 보게끔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결국 막달라 마리아여야 말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도록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게 된다. 복음서를 볼 때 이런 인과관계를 살펴야 왜 그들이 그런 사랑과 헌신을 보이는지를 알기가 쉽다. 마리아는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믿음으로 주를 따른 여인이었고 회심 이후로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경건한 헌신의 삶을 산 여인이었다고 말해주는 신기한 방식을 누가는 쓴 것이다. 물론 예수님도 성적인 대상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녀를 자주 찾은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녀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뜨겁게 사랑하니까 주님도 그녀를 자주 찾고 사랑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도 동일하다. 주를 사랑하는 그 사람을 예수님은 사랑하셔서 가까이 오신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냉냉하고 메마른 가슴으로는 주를 알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마지막에 기록된 복음서로 이해되는 요한복음에서도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보다 더 진실하고 열정적인 마리아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자세히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요한이 마리아를 모시게 되고 여성 신자들을 많이 접해보면서 기록하기로 결정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마리아에 대한 여러 대적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았다고 볼 수 있고, 주를 따를 때 청년으로서 마리아의 회개와 헌신에 감동을 받았을 요한으로서는 꼭 해야 할 의무로까지 여겨졌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요한복음 마지막에 사도 요한은 베드로가 회복되는 장면을 통해 주께서 형제들과 양들을 먹이도록 부탁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베드로가 세번씩이나 주를 부인했다 해도 회개함으로써 주의 긍휼과 신뢰를 얻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것은 그녀는 한결같다는 말을 요한은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회심은 두 번에 걸쳐 일어난 진실하고도 참된 회개였기 때문에 열심에 있어서는 저들을 능가한다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는 게 사도 요한의 기록 의도로 보인다. 따라서, 그녀의 전력을 문제삼자면 베드로의 마지막 배신을 생각해 보도록 신자들을 설득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마리아가 왜 처음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붓고 울며 머리털로 그 발을 씻겼는가라는 질문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 사실 복음서 기자들도 이 문제를 깊이 드러나게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도 더는 깊이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이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겠다. 특히 누가와 요한은 그녀의 문제를 복음을 듣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로 말하려고 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타락한 인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그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지 누군가를 표적으로 만들어 사람들로 지탄받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은 다 죄인이고 드러나지 않을 뿐 부끄러운 일들을 다 가지고 산다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상하게 보이는 자도 돈 많은 자도 죄로 타락한 인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구원받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기 혼자만 거룩하고 고상하다 하는 자는 감춰진 부끄러운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드러나 수치를 당하고 적발되고 말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그 때 어떻게 행하느냐라는 점이라고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 그의 긍휼을 힘입고 죄사함을 받고 통회하며 회개해서 새로운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깨어지고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며 회개를 경험한 인물로 볼 수 있고, 그 삶의 결단이 다시 허무하게 무너지고 죄의 수렁에 빠져있었을 때 주께서 그녀를 다시 찾아오셨다고 생각해야 그녀의 도유가 이해가 되기 싶겠다. 멀리서 그녀를 건지고 회복시키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며 머리털로 씻고 향유를 부으며 감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성을 하는 사람들은 두번째 회심을 다루는 본문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사실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주를 섬기며 따르는 여자들은 마리아의 인맥들이라고 볼 수 있다. 헤롯의 청지기였던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등은 눅24:10에도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고급관리들과도 인맥이 닿을 정도로 귀족적이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여인이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그녀 곁에 있던 여인들도 예수를 믿고 따르는 대단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숱한 남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얻고자 유혹하던 향수 선물은 더 이상 쓸모도 없었다. 귀하고 진실한 사람의 선물이라 버리지 않았을 뿐이지만, 주님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쏟아부어도 아깝지가 않았다. 정말 이런 변화를 경험하는 자는 복되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주님을 따르며 헌신하다가 나사로와 마르다에게 다시 돌아가서 일상적인 삶을 회복하고 있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 사역에 몰두하다 보면 기진하고 지치기 쉽다. 그럴 때는 다 접고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 안식년은 내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작은 인생의 모습으로 돌아가 큰 사역의 결실들이 마음을 지치게 하고 높아지게 했던 것들을 다 제 자리로 돌리게 만드는 시간이다. 우리는 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약하디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위대한 주님이 그런 겸손한 모습을 눈여겨 보시고 찾아오시는 축복의 자녀들이 아닌가! 멀리 이 곳 저 곳을 다니기보다 머물며 기도와 말씀에 몰두하던 그녀의 모습은 정말 놀랍고 아름답다. 바울의 말처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해보아야 할 장면이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인데, 마26:6-13과 막14:3-9과 요12:1-8에 기록되어져 있다. 누가는 처음 마리아가 회심한 사건과 마리아가 주님 발 앞에서 말씀을 청종하다 마르다의 원성을 사던 사건만 기록해 두었다. 여기에서 누가가 눅7:36-50 본문에서 정확히 기록해두지 않은 시몬에 대한 정보가 마태와 마가에 의해서 정확히 확인되어지게 된다. 이 바리새인은 시몬이란 이름을 쓰는데 문둥이였고 베다니에 살고 있었다. 눅8:2에서 이 여인이 막달라인이란 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 사건이 벌어진 지역이 디베랴 근처 막달라 지역인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지만 마태와 마가는 분명하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처음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하는 시몬의 집 장면에서 이미 마리아는 나사로와 마르다의 집에 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그녀를 막달라인이라 부르고 있었다면 그녀가 막달라 지역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에 그 지역으로 이사를 온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미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기 원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리아의 도유사건이 두번째 회심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그녀는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회개하고 더는 어둠의 일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으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리아의 인맥 중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디베랴에 자신의 수도를 삼은 헤롯 안디바를 생각하게 한다. 막달라는 디베랴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의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헤롯의 왕궁을 드나들던 여러 고급 귀족들과 관료들의 정부 역할을 하며 300데나리온이나 나가는 향유옥합을 선물로도 받을 수 있었던 마리아를 그려볼 수 있게 한다. 마리아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낸 사건은 아주 충격적인 일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까지 믿어왔던 한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추한 권력의 야비함에 철저한 염증을 느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마리아는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이 말하던 예수에 대한 온갖 악한 중상모략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예수는 오히려 그녀를 이해해주고 위기에서 구해주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가족들에게로 돌아와 있었다고 보면 모든 정황이 잘 맞아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안디바의 영역에서 로마총독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해서 마리아의 남자관계가 이전의 삶이 쉽게 정리되지는 못 했다고 생각해 보게 된다. 마리아가 가진 여러 의혹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거기까지 쫓아왔던 옛사랑 때문에 결국 베다니 시몬도 그녀가 그런 일을 하는 여인이었다는 점을 알 정도가 되고 말았다. 한 사람을 수렁에서 건져낸다는 게 어려운 이유가 이런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채나 별의 별 수를 다 써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는 이전 관계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고 하겠다. 그 위험스런 순간에 주님은 다시 베다니에서 마리아를 붙들어 주셨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주님께 마리아는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눈물로 그 발을 씻고 있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예수께서 끝까지 그녀를 다른 사람들의 정죄로부터 마리아를 보호하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태도만이 그녀를 과거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을 결심하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이 너무 싸늘하고 곱지 않을 때, 차라리 이전의 삶이 낫겠다며 새출발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겨우 어둠의 수렁에서 벗어나온 자들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한 곳처럼 비춰지기 쉽다. 자비와 사랑으로 용납하고 품어주는 환경이 정말 그런 마리아들에겐 필요해진다고 하겠다.

요한의 기록도 누가와 비슷한 여지를 남겨주고 있는데, 마치 베다니 마르다와 마리아가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벌인 것처럼 그려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누가는 주님을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가 그 죄인이 아닌 것처럼 그리려고 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다시 말하면, 문둥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왔던 죄인은 더 이상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전의 죄인이 더 이상 아니었다.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갖고 예수를 따르던 제자일 뿐이란 말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이 마치 나사로의 집에서 잔치한 것처럼 그린 것은 굳이 시몬을 언급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시몬이 잔치를 벌인 게 아니라 마리아가 벌인 거나 같다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비슷한 사건은 공교롭게도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벌어졌음을 볼 수 있는데, 부요하다 해도 진실한 섬김과는 거리가 먼 그의 오만한 태도와 대조적으로 가난하지만, 진실하게 예수를 섬기는 마리아를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은 부자들이 많았지만, 영적인 감각을 상실한 문둥이와 같이 병들어 있고 말씀을 듣고도 통회하거나 자복함이 없는 더 악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늘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과거를 문제삼고 발목 잡기를 잘 하는 자들이란 말이다. 일곱 귀신 들려 병들었던 여인 - 물론 이것은 다분히 누가의 의도된 설정일 소지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 이 문제가 아니라 교만하게 자기 의에 사로잡혀서 회개치 않는 그들이 문제였다는 말이 된다. 마리아에겐 드리고 싶어도 드릴 게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언젠가 귀하게 선물받은 향유옥합만 추억을 담고 남아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전의 죄된 삶을 청산하고 가난한 상태로 내려앉아 예수님만 따르고 있었다고 생각해야 맞다.

여기에서 또 다른 차이점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마26:7과 막14:3은 동일하게 마리아가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똑 같은 사건이지만 요한은 요12:3에서 마리아가 눅7:38처럼 발에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겼다고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마태가 잘못 기록한 것도 아니요 요한이 속이려는 것도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요한은 이전에 있었던 마리아의 회심을 살짝 더해서 보여주려고 했다고 볼 수 있고 또한 앞 장 요11:2에서 마리아에 대한 해설과 동일하게 표현해 보고자 했을 수도 있고 그럼으로써 요한의 해설이 마치 뒤에서 벌어질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것처럼 만들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녀를 막달라 마리아와는 다른 인물이란 오해의 소지를 남기고야 만다. 주님은 그녀를 감춰두려고 하신다고 보아야 한다. 늘 대적의 참소가 쫓아다니는 그녀를 보호하려고 하신다는 말이다. 이 사건이 벌어질 때, 가룟 유다와 제자들은 분개해서 그녀를 책망했음을 볼 수 있다. 그녀가 예수를 사랑해서 행하는 일마다 이런 비난과 훼방이 쫓아다니고 있었다. 제자들은 그것을 허비하는 것으로 판단했고 삼백 데나리온이나 족히 되는 향유옥합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 도왔다면 좋았겠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그녀가 그 옥합을 팔지 못하는 사정이 분명히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자기가 쓸 수는 있었는데 귀중하게 아껴두었다가 주님의 장례를 생각하며 부었고 그녀의 그 헌신을 주님은 인정해 주셨다. 주님은 마리아의 의식 같은 이 도유사건을 보며 자신의 시체에 나드를 바르며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예고되고 있음을 직감하시고 계셨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님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작별의 자리와도 같은 성격의 시간이었다고 요한은 그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를 극진히 환송하는 것으로 복음서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님은 자신이 죽게 될 것과 다시 살게 될 것을 마리아가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고 마리아는 주님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볼 수 있다. 성령이 하신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서글픈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혼동을 느끼기도 하면서 주님의 마지막 길을 뜨겁게 환송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결같이 제자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믿음과 사랑은 복음서 기자들, 특히 사도 요한에게서 인정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늘 주님을 곁에서 쫓아다니던 제자들이 이르지 못한 높은 곳에 마리아는 이미 도달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러 활동에 물러나서 말씀을 묵상하며 머무르는 일이 헛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무르고 있는 그녀를 활동과 사역이 바쁘다고 예수님께서 잊어버리신 게 아니다. 도리어 찾아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부활의 영광까지도 목격하게 하시고야 만다.

마리아는 늘 대적이 쫓아다니면서 괴롭게 했고 그래서 물러나 베다니에 머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곳이 차라리 안전했다는 말이 된다. 누가가 기록한 일곱 귀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일곱은 여럿이라는 의미보다는 강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마리아를 치유하셨을 때, 이 귀신들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다시 쫓아와서 마리아를 삼키려 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디에서 우리는 그 대적들이 출몰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까? 복음서는 두 번씩이나 마리아의 순전한 사랑이 부어지는 자리에서 그녀를 판단하고 비난하며 나타난 시몬이나 가룟 유다를 통해서 나타났다고 보게끔 한다. 우연하게도 바리새인 문둥이 시몬의 집이었고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도리어 시몬과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이로 볼 때 이 영은 정죄를 무기로 악의적인 누명과 참소를 뒤집어 씌우는 바리새의 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이 영은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고 볼 수 있게 된다. 마리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과 재물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권력과 부를 누리는 고급관료들을 통해서도 역사하는 정사적인 존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정신적 육체적 병마로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이런 영과의 싸움은 쉽지가 않다. 예리한 말씀의 검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리아는 머물며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있었다고 보아야겠다. 영성이란 죄인이 자유를 얻게 되는 길고 긴 항해에 비유될 수 있겠다. 대적이 강할수록 피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영적 싸움을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마리아는 어려움이 많았고 주님도 그녀를 숨겨두기 원하셨고 사도들 또한 복음서의 말씀으로 그녀를 변호해 주어야만 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그녀를 비난하며 내 돈 펑펑 쓰고 다닌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이 늘 그녀를 따라다닌 거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자가 마리아를 사랑해서 돈을 주면서 그런 말을 자주 했고 결국 종교적인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 그 말을 쏟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정사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회개해서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 더 더욱 그런 말을 해대면서 정죄를 일삼는다는 말이다. 도리어 예수 믿기 전에는 그다지 괴롭히지도 않다가 예수 믿고 나면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괴롭게 한다는 말이다. 정사로 역사하는 영이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많이 활동하는 이유는 예배라든가 가르침을 통해 심지어는 기도와 교제의 말들을 통해서까지 이런 정죄와 참소의 말을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 계속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승에는 마리아가 프랑스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이 영이 멀다고 거기까지 안 따라갔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겠다. 파리라는 이름도 참 신기하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캐톨릭이 강한 지역이었고, 지금은 동성애자들이 많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리아를 제대로 따랐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파리대왕을 무분별하게 추종한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로마황제들 가운데도 동성애가 많았다고 하는데, 악한 영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자신의 활동을 나타내며 건재함을 과시하려고 한다. 어쨌든 마리아는 정말 어려운 싸움을 싸워냈고 대적을 멀리까지 끌고 감으로써 초대교회의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녀를 괜히 알지도 못하고 미워하지 말자. 그녀는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이 여인의 용기있고 헌신적인 행동을 예수께서 어떻게 보상하셨나 생각해 보도록 하자.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는 말씀을 예수님은 해주셨다. 늘 따라다니며 말로 괴롭혀대니 주님은 온 세상에다 대놓고 칭찬하시겠다 하신다. 수천 년 동안 칭찬듣게 하겠다 하셨다. 할 테면 자꾸 해 보란 말이다. 마귀가 입을 열면 닫는 법이 없으니 한번 해 보자. 수천 배 수만 배 예수님은 칭찬하시겠다는 말이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되는데,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부가적인 상황설명이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도행전에도 좀 더 자세한 기사가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가는 주님의 마지막 작별의 지점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는데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하시면서 떠나셨다고 기록했다. 사도행전에서는 누가가 이렇게 쓰지 않고 예루살렘 동편 감람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만큼 다른 의도를 생각할 수가 있게 된다. 마리아가 주님을 환송했듯이 예수님께서 그녀의 집 앞까지 배웅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겠지만 마리아는 알 수 있었으리라. 제일 안타깝고 아픈 마음으로 향유를 부었던 마리아에게 부활의 첫 선을 보여주신 분이 주님이셨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기억하신다. 그 사랑을 기억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갚아주신다. 사랑하면 사랑으로 꼭 갚아주신다. 누구든지 주를 존귀히 여기면 주께서도 그를 존귀히 여기신다. 이방인이었던 블레셋 가드사람 오벧에돔이 세 달 동안 법궤를 경외함으로 대했을 때, 하나님은 그와 그 후손들을 평생 주의 성전에 문지기가 되는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 그러나 20년 동안이나 법궤를 곁에서 관리하며 주를 수종든 아미나답의 집에는 주께서 떠나시던 날, 그 자녀를 잃게 되는 두려움과 슬픔이 임했음을 볼 수 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값진 진주 하나를 처음 발견한 진주장사와 이미 진주 하나를 사두고 다른 보화가 더 좋다고 눈독들이는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과 거꾸로다. 신앙이 오래 될수록 많은 훈련을 받고 직임을 얻고,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기도 30년 했다 해도 돌아온 탕자 이상의 대우를 받을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다말, 라합, 룻, 막달라 마리아, 삭개오 등등 많은 증인들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들은 전부 주께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경험한 초신자 시절이 있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너무 뜨거워서다. 사랑의 순도가 기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교회의 지도자들보다 더 높아서다. 하나님을 정말 귀중하게 여겨서다. 첫사랑을 잃고 냉냉해진 가슴으로 참된 회개 없이 사는 신앙인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내가 주를 멸시하며 사는 게 아닌가? 잘 모를 수도 있다. 바리새인들처럼 감각할 수 없는 영적 문둥병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분명한 싸인을 하나 알려주고 싶다. 누군가가 주를 위해 산다고 무슨 일을 한다고 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막달라 마리아를 괴롭게 만드는 말을 하고 있지 않는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것도 참 희한한 경우에는 거꾸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생각하시는데, 어떤 목사는 그 마리아를 핍박하는 여자가 자기한테 도움도 주고 하니까 그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로 보이기도 하나 보다. 어느 날 진짜 막달라 마리아를 보고는 이 목사가 하는 말이 그 사람은 나한테 잘 하는데 한다. 설교가 참소로 둔갑하게 될 줄이야. 자기가 주님의 자리에 앉아서 마26:10을 말한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어느새 가룟 유다로 뒤바뀌어 버린다. 이런 거꾸로 목사가 교회 차리고 핍박하는 자들을 옹호하고 앉았으니 교회도 제대로 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주님은 거꾸로 대하시는데 말이다. 사탄이 안 끼이는 곳이 없지만 교회에서 주님 되는 게 제일 무섭다. 막달라 마리아가 편할 날이 없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주님이 수천 수만 배 칭찬듣게 하실 테니까. 할렐루야!!!

Posted by soulart